예전에 한창 핫 했던 일러스트레이터 '김시훈'. 한동안 그의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알게 모르게 덕질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의 인터뷰 중에 에곤 쉴레를 너무 좋아했으며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에곤쉴레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구불구불 자유분방하고 뒤틀린 라인, 우울하고 채도 낮은 색감. 노골적인 묘사. 
10대에 이어 20대 초반에도 여전히 질풍노도 였던 시기.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격렬함에 감동받아 한동안 에곤쉴레는 최애였던 고흐를 제치고 저의 최애 화가에 등극합니다. 그러고 보면 그 시기에는 제 마음에도 뭔가 분출하지 못했던 격렬한고 뒤틀린게 있었나 봅니다. 학창 시절엔 치기 어리게 고흐처럼 살다 갈꺼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기도 했으니까요. 40년 조금 안되게 산 지금은 그 생각을 하면  '나도 참 철이 없었구나.' 싶어 그저 헛웃음만 납니다. 

 

 

Self Portrait with Physalis

에곤 쉴레는 1890년 오스트리아의 들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16세인 1906년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합니다. 하지만 보수적이고 고루한 아카데미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3년 뒤 아카데미를 그만두었으며, 당시 유명했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만나게 됩니다. 클림트는 이 젊은 화가의 재능을 알아보고 기꺼이 그의 멘토가 되어 주었습니다.

초기에는 클림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점차 클림트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 시키게 됩니다.

 

매독으로 인한 아버지의 광기와 사망, 어머니의 무관심 아래서 여동생에게만 의지했던 그의 유년시절 기억이 그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여동생인 게르트 루드와 근친상간 성향을 보여 두 사람이 필름을 현상하려고 한방에 들어갔을 때 그의 아버지가 잠긴 방문을 부신 일화도 있다고 합니다. 

 

1910년 쉴레는 누드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1년동안 노골적인 성적 묘사와 야윈 인물의 특색이 살아있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게 됩니다.

'Kneeling Nude With Raised Hands' 이 작품은 20 세기에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누드 작품 중 하나입니다.

 

Kneeling Nude With Raised Hands

같은 시기에 또한 그는 어린 소녀들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1911년엔 당시 17세였던 발리 노이질(Wally Neuzil)이란 소녀를 만납니다. 원래는 클림트의 모델이였던 그녀는 이후 에곤 쉴레와 함께 살며 그의 연인이자 그의 뮤즈가 됩니다.

외설적으로 취급받은 에곤쉴레의 작품과 자유분방한 그들의 생활 방식은 어떤 마을 주민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했고, 두 사람은 이곳저곳을 쫓기듯 옮겨 다니게 됩니다. 1912년에는 노이렌바흐에서 미셩년자 소녀들을 그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00점이 넘는 음란물로 간주되는 그림을 압수당합니다. 그의 누드모델이었던 소녀들 중 한명이 그를 고발했고 이로인해 약 3주간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Portrait of Wally 

 

 

 

 

그의 작품활동을 지지해 주는 헌신적인 연인 발리를 두고 1914년 에곤쉴레는 이웃집에 살고있던 에디트 하름즈 라는 다른여자에게 눈을 돌리게 됩니다. 발리와 동거 중 임에도 불구, 에곤쉴레와 에디트는 결혼을 약속합니다.

4년간의 헌신이 헌신짝이 되어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발리에게 에곤쉴레는 한술 더 떠 정신나간 제안을 하는데 그 제안은 바로 일년에 한번씩 본인과 발리 에디트 셋이서 여행을 가자는 것이였습니다. 물론 순수하게 여행만 하자는 뜻은 아니었겠죠.

그러고 보면 위대한 예술가들 중에는 평범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도덕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을 가진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라 위대한 예술가가 못 되고 있는 걸까요.... ㅜㅜ

아무튼 이에 화가 난 발리는 에곤쉴레를 떠나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았으며 종군간호사가 되어 23살에 크로아티아 파견중 성홍열로 사망합니다. 

 

death and the maiden

죽음과 소녀 (death and the maiden) 이 그림은 발리와의 이별 후 그가 그린 그림입니다. 끊어질 것 같은 가느다란 팔로 죽은 남자를 애절하게 안고 있는 소녀를 보면 발리가 그를 많이 좋아했으며 둘 사이 이별의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발리가 떠난 후 쉴레는 3년 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 갑니다. 1차세계대전 당시 군에 징집되긴 하였으나 그의 예술적 재능을 높이 산 장교의 배려로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며, 1918년 열린 개인전에서는 경제적으로도 예술 적으로도 그에게 큰 성공을 안겨줍니다. 아내 에디트는 당시 임신 중이였으며 따듯한 가족을 염원하는 희망으로 그는 가족이라는 작품을 그리게됩니다.

 

The Family

하지만 그 행복과 안정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차세계대전 말 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1918년 10월 28일 아내 에디트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쉴레 또한 사흘 뒤인 1918년 10월 31일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의 나이 28세였습니다.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쉴레이기에,만약 일찍 죽지않고 피카소나 클림트처럼 오래 살았다면 이 천재적인 작가가 어떤 작품을 남겼을 지 너무나도 안타깝고 궁금합니다.

 

숨기는게 미덕이였던 욕망을 분출하며, 금기에 도전했던 그의 짧고 격렬했던 삶에, 시대의 청춘들은 여전히 반응하고 있나 봅니다. 

The Embrace (The Lo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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