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는 1832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판사인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그가 법학을 공부하길 원했습니다. 미술에 소질이 있던 에두아르는 자신의 진로를 미술로 정하고 싶었으나 반대하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17세에 선원 수습생이 됩니다. 해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두 번이나 낙방한 후에야 아버지는 에두아르가 미술을 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1850년 당대 영향력 있던 화가 토마 쿠튀르의 문화생이 되었으며, 종종 루브르 박물관에 찾아가 유명 작품들을 모작하기도 했습니다. 1853년부터 1856년 까지는 자주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독일 등을 여행하며 F 할스, 티치아노, 조르조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856년엔 본인의 작업실을 열고 작업에 전념하였습니다. 1861년 The 'Spanish Singer'란 작품으로 살롱전 에어 입선하였으나 그 이후의 작품들은  살롱전에 여러 차례 낙선하게 됩니다.

The Spanish Singer 1860

 

살롱전에서 낙선한 작품들을 모아 전시한 1863년 낙선전에 전시된 그의 작품 '풀밭위의 점심식사'는 대중의 비난과 조롱을 마주합니다. 고전작품들에서 인물의 구도를 차용하였으나(라파엘로의 파리의 심판, 티치아노의 전원 음악회) 현실적인 의상과 배경을 입힌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마치 잘 차려입은 부르주아 남성들과 매춘부 여성이 함께 어울리는 것처럼 보였고, 이에 당시 부르주아 계급들은 자신들을 비꼬는듯한 이 작품에 당황하게 됩니다. 

원근감을 무시하는 듯한 배치와 중간색조를 생략한 명암은 그림을 평면적으로 보이게 하였으며 시대를 앞서 나간 그의 그림을 대중들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Luncheon on the Grass 1863

 

 

1865년엔 살롱에 '올림피아'를 출품하며 또 한번 미술계는 시끄러워집니다. 당시 여성의 누드는 신화나 역사화 속에서 아름답고 경건하게 묘사되는 게 불문율이었는데 마네의 그림 속 여성은 아름답거나 신격화되지도 않았으며 매서운 시선으로 관객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매춘부로 보이는 이 여성 옆에 서있는 흑인 노예는 남성 손님이 그녀에게 보내는 꽃을 전해주려 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은밀한 욕망이 투영된 듯한 이 그림에 대중들은 다시 한번 분노합니다. 

Olympia 1863 

 

미술계의 문제아로 떠오른 그의 작품에 역설적으로 젊은 예술가들은 열광했으며 피사로, 모네, 시슬레등 인상주의의 시초가 된 화가들에게 마네는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모네와는 깊은 우정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네는 아카데미의 공인을 기다리며 인상파 전시회에 참여하기를 한사코 거부했으며 자신이 인상파와 동일시되는 것을 염려했습니다. 

 

현실적인 파리의 모습을 즐겨 그렸던 마네는 1882년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을 완성합니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여성의 뒤로 비치는 거울 속 여성의 뒷모습과 신사의 모습은 화가의 시선과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며 여전히 만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A Bar at the Folies-Bergère 1882

1883년 매독과 류머티즘의 합병증으로 인해 왼발을 절단하게 되었으며, 그 후유증으로 시달리다 4월 30일 파리에서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전 미술계의 이단아로 많은 비평과 조롱을 감수해야 했던 마네는, 역사 속에 모더니즘의 창시자이자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