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화가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입니다. 피카소와 마티스가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칭했을 정도로 당시 젊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정물, 특히 사과를 많이 그린 사과 마니아 이기도 합니다.

 

폴 세잔은 1839년 프랑스 남부의 액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은행가인 아버지의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평생 재정적으로는 어려움이랄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강압적인 아버지의 태도와 사생아로 태어난 그의 출신은 그를 우울증에 시달리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1852년 학교에서 체구가 작아 괴롭힘을 당하던 '에밀 졸라'(훗날 위대한 작가가 되는)를 구해준 후 그들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이때 에밀 졸라가 자신을 구해준 폴에게 감사의 의미로 사과를 주었고 이후부터 폴 세잔은 사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폴 세잔은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강압적인 아버지는 그가 화가가 되는 것을 결사반대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대학에 들어갔으나 적성에 맞지 않았던 폴은 곧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에밀 졸라는 미술을 하고 싶어 했던 그를 지지해 주었고, 에밀 졸라와 어머니의 응원에 힘입어 그는 1861년  파리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합니다. 이때 그는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학생들보다 자신의 실력이 형편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살롱에서 번번이 낙방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이 시기 그의 그림은 검은색이 주를 이루며 어두운 분위기를 풍깁니다. 

 

The Artist's Mother and Sister  1868

1869년 오르탕스 피케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카미유 피사로와 젊은 인상파 화가들을 만나며 그의 화풍에는 변화가 생깁니다. 특히 피사로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를 따라 밝은 풍경화를 작업하기 시작했습니다. 1874년 처음 열린 인상파 전시회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총 3회의 인상파 전시회에 참여했으며 그 이후에는 인상파를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연구하고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오르탕스 피케와 동거를 하며, 아이가 태어났지만 별다른 벌이 없이 아버지의 지원에 의지했던 폴 세잔은 이 사실을 알면 경제적 지원이 끈길까 두려워 감히 아버지께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부인과의 관계가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너무나 다른 성격이였고 오르탕스는 예술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하네요. 그래도 꽤나 참을성 있는 성격이라 수없이 폴의 모델이 되어 주었습니다. 1886년 폴의 아버지가 쇠약해지며 두 사람은 가족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둘 사이에 사랑은 남아있지 않지만, 이미 14살이 된 아들이 자신처럼 사생아로 살길 바라지 않았던 폴은 결혼을 결심하였습니다. 

Mont Sainte-Victoire 1885-1887

 

1886년 에밀 졸라의 소설 L'oeuvre' 가 발표되며 30년간 우정을 쌓아왔던 에밀과 폴의 사이엔 큰 금이 갑니다. 이 소설에는 재능 없는 실패한 화가가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데, 폴은 이 화가가 자신을 모델로 삼았다고 큰 오해를 하게 됩니다.

화가 난 폴은 "이렇게 훌륭히 추억을 담아주어 감사하다."라고 에밀 졸라에게 편지를 보내며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훗날 에밀 졸라가 사망하자 폴은 크게 슬퍼했다고 합니다.

 

노년에 그는 고향인 액상프로방스로 돌아와 작업에 홀로 작업에 몰입하였으며, 사물의 본질적인 구조와 형상을 파악하려 했습니다. 자연의 모든 형태를 원기둥과 구, 원뿔로 해석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였으며 다각도에서 본 사물을 자신의 그림에 그려 넣으려 했습니다. 이 작업에 피카소는 큰 영향을 받아 훗날 입체파라는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 냈습니다.

또한 폴은 다양한 색채를 사용한 그의 작품은 마티스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며 마티스는 후에 야수파 운동을 주도하게 됩니다.

 

Still Life with a Curtain  1895
The Basket of Apples 1890~1894

1906년의 어느 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밖으로 나간 노년의 폴 세잔은 폭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시간 정도 폭우를 맞은 그는 집에 돌아오던 길에 쓰러졌고,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어 집으로 실려왔습니다. 하지만 정신이 든 이튿날에도 그는 그림을 그리려 밖으로 나갔고 또 한 번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기력이 다하는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리려 했던 이 화가는 1906년 10월 22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Les joueurs de cartes 1892~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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