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화가 윈슬로 호머는 1836년 보스턴에서 태어났습니다. 호머의 어머니는 아마추어 수채화 화가였으며, 어머니의 영향으로 호머 역시 유년시절 자연스럽게 미술을 접하며 재능을 키워나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석판화 인쇄 공장에 취직했으며, 1859년에는 뉴욕에 스튜디오를 얻고 '하퍼스 위클리'에 삽화를 그리며 프리랜서 삽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삽화가로 활동하며, 미국의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미술 공부를 병행하기도 했습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호머는 전쟁의 모습들을 그려 '하퍼스 위클리'에 기고하게 됩니다. 전투 장면보다는 군인들의 일상적인 야영생활을 그림에 담아냈습니다. 그는 1863년부터 1866년까지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꾸준히 남북전쟁을 그린 작품들을 전시하였습니다. 호머의 작품들은 호평을 받았으며 1865년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후인 1867년 호머의 작품'Prisoners from the Front'가 미국대표로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되었고, 그는 파리로 가서 1년 정도 머물며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과 당시 인기 있었던 일본 판화들을 접하였습니다. 

 

Prisoners from the Front 1866
Crossing the Pasture 1871-1872

파리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호머는 자연의 풍경과 그 속의 순박한 인물들에 매료되었으며, 뉴욕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벗어나 농촌의 서정적인 풍경을 작품에 담았습니다. 수채화가 주는 맑고 투명한 효과를 탐구하며 많은 작품을 그리게 됩니다. 당시까지는 수채화는 완성이 아닌 준비단계의 그림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는데, 호머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작품들은 이러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Moonlight 1874

1875년에는 삽화가를 완전히 그만두고 작품활동에 전념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881년에서 1882년까지는 영국 북해의 작은 해안마을에서 지냈으며 바다와 그 안의 강인한 인물들에 대한 작품의 영감을 떠올렸습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작은 바닷가 옆의 마을 프라우츠넥에 정착하여 남은 일생을 그곳에서 보내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The Herring Net  1885

미국의 서정적이며 자유로운 모습을 아름답게 그렸고, 말년에는 바다위의 강인한 인간의 모습을 즐겨 그렸던 화가는 1910년 74세에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명이지만 고독한 은둔생활을 즐기는 타입이었고, 생전에 사생활에 대해 극도로 함구했기에 알려진 바가 별로 없습니다. 본인의 예술관에 대해서도 입이 무거웠기에 3자의 입장에서는 그가 어떤 생각으로 작품을 완성해 나갔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전해지는 생동감에 어느 순간 그림 속의 풍경에 서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훌륭한 하나의 그림은 열 마디의 말보다 더 힘이 있다는 걸 작가는 알았던 것 같습니다. 

Fox Hunt 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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