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화가는 모네, 시슬레, 르누아르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초기 인상주의의 대표화가 프레데레크 바지유입니다. 

1841년 프랑스의 부유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유진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접하고 화가의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집안에서는 의학공부를 하는 것을 전제로 그의 그림 공부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1859년 의학공부를 시작한 그는 1862년 파리로 이사해 공부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또한 샤를 글레즈의 화실에 들어가 모네, 시슬레, 르누아르와 친구가 되며 화가로서의 꿈도 키워나갔습니다. 

 

1864년 의사시험에서 낙방하며 그는 의학공부를 그만두고 미술활동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부유한 바지유의 집안은 그가 생활하는데 어렵지 않도록 꾸준한 경제적 지원을 해 주었으며, 마음이 따듯했던 바지유는 그 돈으로 친구들의 작품을 사주거나 자신의 아뜰리에를 친구들과 함께 쓰며 재료를 지원해 주는 등, 자신의 꿈뿐만이 아닌 친구들의 꿈 또한 든든히 후원해주었습니다. 

 

바지유는 풍경화보다는 인물화에 관심을 두었으며 섬세한 인물 묘사가 특징이었습니다. 

The Pink Dress 1864 

1866년부터 살롱전에 출품했으며 첫회에는 출품한 두 점의 작품 중 한 점이 당선되었고, 1869년에는 자신의 가족모임을 그린 작품이 당선되었습니다. 

 

 

The Family Reunion 1867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모델로 다양한 작품을 그리던 바지유는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해서 입대하였고, 이 전쟁에서 29세의 젊디 젊은 나이에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훤칠한 외모에 따듯한 성품, 부유한 집안에 재능까지 뛰어났던 어느 하나 빠지지 않았던 그를 어쩌면 하늘은 질투했었나 봅니다. 

그의 친구들은 미술사에 인상주의라는 큰 족적을 남기고 후대까지 이름을 새겼지만, 바지유는 재능을 꽃 피우기도 전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바지유가 좀 더 오래 살아서 그림을 그렸다면 어떤 작품을 남겼을지 궁금합니다. 르누아르나 마네 같은 풍이 었을지, 좀 더 사실적이거나, 좀 더 따듯한 느낌은 아니었을지, 아니면 모네와 어울리며 다른 스타일의 화풍을 구현했을지.

 

Summer Scene 1869

다 펼치치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의 재능이 너무나도 궁금하고 아쉽습니다. 하늘에서는 친구들을 만나 못 다했던 예술적 열정과 이야기들을 행복하게 꽃 피워나가고 있기를 바라봅니다. 

Bazille's Studio 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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