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 Lilies 1908

80년 넘게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모네의 작품이 다음 주 소더비 런던 경매에 나온다고 합니다. 모네는 생전 자신의 정원에 피어있는 수련을 즐겨 그렸고 약 250점 정도의 작품이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 경매에 나오는 작품도 그중 하나이며, 193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개인 소장가에게 팔린 후 그 집안의 가보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1962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작품 전시회에서 대중에게 공개된 후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작품으로 그 가치 또한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얼마의 가격에 팔릴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클로드 모네는 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모네의 유년시절 그의 가족들은 파리 근교의 항구도시인 노르망디의 르 아브르로 이주했으며 이곳에서의 생활은 훗날 모네의 예술 세게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노르망디 해변에서 화가인 외젠 부댕(Eugène Boudin)을 만난 모네는 그에게 미술을 배우며 외광 묘사의 기초를 배웠습니다. 

19세인 1859년 파리로 간 그는 2년간 머물며 진보적인 예술가 모임에 자주 참석했으며, 스위스 아카데미에서 카미유 피사로를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1960년 군에 징집되어 알제리에서 복무하였습니다. 1년 정도 복무한 후에 장티푸스에 걸려 제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곧 파리로 돌아와 샤를 클레르의 화실에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레, 프레데리크 바지유를 만났으며 서로의 예술적 견해를 나누고, 새로운 접근법을 공유합니다. 매 순간 변화하는 빛의 모습을 빠르게 그려나가는 그들의 화풍은 향후 인상파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865년 여러 화가의 모델이었던 '카미유 동시외'와 사랑에 빠진 모네는 1867년 둘 사이에 장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카미유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 모네의 아버지는 경제적 지원을 끊었으며 두 연인은 가난한 생활을 합니다. 살롱에 출품된 모네의 작품은 종종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그에게 경제적 여유는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The Woman in the Green Dress 1866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모네의 아버지는 그들의 결혼을 허락했습니다. 기혼자는 전쟁터에 가장 늦게 소집된다는 소식이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모네와 그의 가족은 전쟁을 피해 잠시 런던으로 피해있다 1871년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유에 집을 마련한 후 1873년 화가, 조각가, 판화가 등으로 이뤄진 무명예술가협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이들은 1874년 그들만의 전시회를 열게 되었으며 모네는 이 전시회에 '인상, 일출(Impression, Sunrise)'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출품하였습니다. 전시를 관람한 한 비평가가 모네의 작품을 조롱하는 의미로 '인상주의'라는 말을 사용했으며, 이후 모네가 주 측이 된 이 화가들의 집단을 '인상파'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Impression, Sunrise 1872

 

 

 

 

1876년 부유한 백화점 소유주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에르네스트 오셰데와 그의 아내 알리스를 만나 작품 의뢰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유한 후원자는 경기불황으로 1878년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알리스와 그녀의 자식들은 이곳저곳을 떠돌다 모네의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모네와 알리스는 깊은 사이였으며, 물증은 없지만 심상치 않아 보이는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던 까미유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같은 해 까미유는 자궁암을 선고받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Woman with a Parasol 1875

자신의 뮤즈였던 까미유가 세상을 떠난 후 충격을 받은 모네는 한동안 인물화는 그리지 않고 풍경화 작업을 주로 했습니다.  1883년 노르망디 지방의 지베르니로 이주하였으며 남은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으며 부유해진 그는 1890년 큰집과 주변의 건물, 정원을 사들였습니다. 알리스의 남편이었던 에르네스트가 사망하자 1892년 알리스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1890년대부터는 건초더미, 포플러 나무, 루앙 대성당, 수련 등을 연작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빛을 보며 관찰하는 작업을 한 모네의 시력엔 점차 문제가 생기게 되었으며 말년에는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게 되었습니다. 

두 눈이 닳도록 오랫동안 빛을 연구하고 화폭에 담아내던 노년의 화가는 1926년 12월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Water Lilies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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