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portrait 1919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1884년 이탈리아의 스페인계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유년시절 여러 심각한 질병에 걸릴 만큼 병약했습니다. 그는 14세에 장티푸스로 환각을 겪으며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과 팔라초 피티에 있는 그림들을 보여 달라고 헛소리를 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풍경화가 굴리엘모 미켈리의 아래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으나 17세에는 그를 훗날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한 결핵에 걸렸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여준 예술적 재능과 열정을 알고 있는 어머니는 그의 요양을 위해 카프리, 나폴리, 로마, 피렌체를 여행했고, 모딜리아니는 여행 중 훌륭한 예술품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1902년 피렌체의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일년만 다닌 후 베네치아 미술학교에 입학해 현대미술에 대한 흐름을 접했습니다. 하지만 베네치아에서 유흥가를 들락거리며 대마초를 피우는 등 쾌락에 탐닉하기도 했습니다. 

1906년에는 파리로 이주 해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과 조르주 루오, 파블로 피카소, 폴 세잔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접하며 많은 예술적 영감과 이들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와 만나며 조각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한동안 조각작업에 열중하였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재료 당시 벌어진 전쟁으로 구하기 힘들었으며, 작업 중 발생하는 먼지로 인해 폐의 기능이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조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만든 조각품은 길쭉하며 아몬드 같은 눈을 가진 특유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이러한 특징은 그가 그리는 초상화에도 나타납니다. 이것은 어릴 때 미술관에서 접했던 아프리카의 미술품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1914년 조각을 포기하게 된 그는 회화 작업을 중점적으로 해 나갑니다. 

 

 

파리에서 자유로운 보헤미안의 삶을 살며 그는 서서히 자신의 육체를 파괴적으로 망가트려갔습니다.  

알콜과 마약에 중독되었으며 잘생긴 그의 옆에는 항상 여자들이 넘쳐났습니다. 1917년에 그는 러시아 조각가  차나 올로프의 소개로 운명의 사랑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부유한 가톨릭 집안 출신의 그녀는 가족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모딜리아니와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그해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개인전을 열었지만 유리 너머로 보이는 두 점의 누드화로 인해 경찰의 제제를 당했습니다. 

 

Nu couché 1917-1918

모딜리아니는 가난했으며,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싼가격에 많은 작품을 팔았지만 술과 마약으로 탕진해 수중에 돈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1918년 잔 에뷔테른은 두사람의 첫째 딸 잔 모딜리아니를 출산했습니다. 이 시기 잔과 모딜리아니는 서로의 초상화를 그리며 자신들만의 작품 활동에 집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건강은 점점 나빠져가고 있었으며 기침을 하다 피를 토하기도 여러번이었습니다. 1919년 둘째 아이를 임신한 잔 에뷔테른은 생활고로 인해 친정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모딜리아니는 결핵성 수막염으로 1920년 1월 22일 파리 자선병원에 입원했고 1월 24일 숨을 거뒀습니다.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던  에뷔테른은 이튿날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뱃속의 아이와 함께 생을 끝내고 말았습니다.

 

 

 

Jeanne Hébuterne 1919

모딜리아니는 그림 속 인물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어느날 잔이 모딜리아니에게 물었습니다. "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죠?" 그러자 모딜리아니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이해하게 되면 눈동자를 그릴게요." 함께산 후 얼마되지 않아 그는 유난히 깊은 잔느의 눈동자를 그려넣었습니다. 

 

Porträt der Jeanne Hébuterne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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